‘재생’이라는 개념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였다.

서구에서 16세기 초엽은 서구 역사상 가장 혼란하고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에 앞선 시대, 즉 14, 5세기의 발견들의 꼬리를 물고 인간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인본주의 사상을 들춰내기 시작했고 아메리카의 발견은 강대국으로 하여금 부를 축적하게 했고, 이로 인한 식민지와 해상 무역을 위하여 힘의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전쟁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되었고 이로 인해 종교 전쟁이 잇따르게 되었다. 알프스 이북의 나라들에서 루터와 칼빈의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이 나왔으며 대성당의 건축을 위하여 면죄부를 팔던 교황의 힘에 정면으로 맞섬으로서 교황의 권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이는 독자적인 그들만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성립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사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다른 노선을 가게 된 알프스 북부의 나라들은 르네상스의 양식이 더 늦게 수용된다. 이 지역 대표적 화가로는 뒤러와 홀바인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엄격한 궁정풍의 이상을 추구하는 예술로 르네상스 예술이 처음으로 태동한 피렌체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나타내었으므로 르네상스로 같이 분류하지는 않는다. 초기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에게 있어 특히 가장 중요한 임무를 떠맡았던 건축가들을 고민스럽게 했던 것은 대성당의 건립이었다. 당시 시대를 움직였던 가장 기초 단위의 힘이 종교였으므로 성당 건축은 가장 중요한 미술의 한 영역이었다.

원근법, 소실점, 원주와 벽기둥, 아치를 결합하는데 성공한 전시대의 브루넬리스키, 그 뒤를 이은 알베르티에 이어 16세기에 이르러 교황의 대성당을 건축하는 브라만테는 고전 건축의 이상과 기준을 흡수, 재현한다. 이들은 거의 제작소로부터 어려서부터 스승의 일을 도우며 기법을 익혔다. 다른 어떤 세기보다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던 16세기-이들 중 두각을 나타낸 라파엘로를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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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파엘로의 생애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는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작가 의 한 사람으로 조숙한 천재였으며, 우르비노 지방화가에서 바티칸 교황청 궁정화가까지 최고의 사회적 영예와 세속적 성공을 누린 예술가이다. 1483년 우르비노의 화가 지오바니 산지오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페루지아의 화가 페루지노의 문하에서 그림 공부를 했었다. 초기의 작품은 페루지노의 것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흡사했으나 <기사의 꿈> <삼 미신>에서 <마리아의 결혼>에로의 발전은 서정적인 스승의 예술을 점차 순화하고 형식미로 통일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504년 예술의 중심지인 피렌체로 옮겨 1508년까지 4년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암법을 위시해서 바르톨로메오, 미켈란젤로의 조형법도 단시일에 익혔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그란듀카의 성모=대공의 성모>등 일련의 우아한 성모 그림과 성 가족그림, 초상화 <도니부처>, 그리고 미켈란젤 로의 영향을 나타내는 극적인 <그리스도의 매장>등이 있다. 그의 화실에서 미켈란젤로는 화가로서 갖추어야할 일반적인 교양과 기법을 특히 프레스코벽화의 확고한 기초를 쌓았다. 이때부터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미켈란젤로는 그 당시 피렌체풍의 세련된 미술을 거부하고 기념비적이고 강한 표현을 즐겨하게 된다. 1508년 말에 고향 친구인 브라만테의 추천으로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초청되어 포마로 옮긴 라파엘로 는 1520년 4월 37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12년 간을 바티칸 궁정화가로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 아래에서 일하고 시대의 총아로 그의 작업의 정점에 이르렀다. 바티칸궁 <서명실>의 벽화 중 특히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상징적 회화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 학당>과 <성체논의> 등의 벽화 제작은 그의 총체적인 재능이 그리이스 정신과 그리스도교 정신의 총합이라는 교회의 세계주의적인 의도와 혼연일체가 되어 르네상스 인문주의 예술의 정화로 되어 있다. 특히 <아테네 학당>은 장대한 건축공간과 다수의 인물군상의 완벽한 통일과 조화를 실현하여 고전양식의 규범이 된다. 건축에도 손을 대 1514년 브라만테의 사후 뒤를 이어 레오 10세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주임에 임명되어 그 조영사업을 지도하였다. 또한 다음해에는 고대 유물 감독관에 임명되고 고대 유품들을 조사하였고, 유적지도의 제작도 시도했으나 미완에 그쳤다. 그의 설계로 알려진 건축작품에는 앞서 말한 키지가의 교회 외에 비드니카파렐리의 저택, 로마 근교의 빌라마다마 등이 있다. 그 작풍은 프란체스코 마우라나와 브라만테를 계승한 우아하고 엄격한 고전주의라 하지만 오늘날 그 작품의 대부분이 대폭적으로 수정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는 어렵다. 라파엘로는 살아 있는 동안 예술가로서의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2. 라파엘로의 작품세계

1)라파엘로의 성모자상

UNI5888.gif<그란두카의 성모 1505년. 목판, 유채 피렌체, 피티 미술관>

페루지오 밑에서 수업을 끝내고 피렌체에서 그린 초기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명상에 잠긴 듯 평온한 얼굴은 스승의 화풍을 반영하나 형태의 풍요로움과 장중함은 레오나르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UNI588a.gif<아름다운 정원사의 성모 1507년. 목판, 유채 파리, 루브르 미술관>

이 성모화는 가련미의 매력이 넘치는 작품으로 이름이 높다. 지혜의 상징인 책을 든 성모 마리아와 요한은 꿇어앉아 동경 어린 눈길로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요한의 모습을 잡는 동시에 성모의 얼굴로 유도된다. 성모마리아 가 들고 있는 책은 <솔로몬 지혜서>로 지혜와 지식과 교양이 있음을 보여준다.

 

2)라파엘로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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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인의 초상 1518-19년. 목판, 유채 로마 국립미술관>

라파엘로 애인 포르나리나를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에서는 시에나 태생으로 로마 빵집 아가씨였던 마르가리타 루티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매너리즘적 기질이 강하게 나타난다. 팔 찌에 <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는 문자가 새겨져있다.

 


3)라파엘로의 벽화

UNI588e.gif<아테네 학당 1509-1511년, 프레스코,밑변 820Cm 바티칸 미술관>

바티칸 궁정 장식화 가운데서는 물론이며, 라파엘로의 전 작품을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바티칸 궁 안 서명의 방 왼쪽 벽은<성체논의>, 오른 쪽 벽은<아테네 학당>이 그려 져있다) 54명의 인물이 표현되어 있으며 그 대부분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들이다. 배경건 물은 베드로 성당을 연상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이 책을 끼고 토론하며 걸어  가는 모습이 그림의 핵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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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갈라테아 1512-14년. 프레스코 로마, 파르네제 벽화>

로마의 은행가 아고스티노는 라파엘로의 든든한 후원자 중 한 사람이다. 이 후원자의 별장 파르네제에 그려진 벽화다. 피렌체의 시인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시에서 주제를 따왔는데 못생긴 거인 폴리페모스가 아름다운 바다 요정 갈라테아에게 사랑의 노래를 바치지만 그녀는 그의 노래를 조롱하듯 두 마리의 돌고래가 끄는 수레를 타고 파도 위를 달려가고  다른 바다의 신들과 요정들이 그녀 주위를 몰려드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라파엘로는 부드럽고 순수한 성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의 그림 [요정 갈라테아](1514년 작)는 인물의 배치, 구도상의 교묘한 기 법 등으로 후세의 찬사를 받고 있다. 말하자면 그림 감상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인물들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현실의 모델을 그린 것이 아니 라 [라파엘로]의 마음에 있는 어떤 이념을 형상화시켰다는 점에서 놀라 움을 던진다. 지금까지 자연을 묘사하고 흉내내려한 르네상스 미술의 세 계와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연을 추구하다가 의도적으로 자연을 개선하려는 우를 범했던 르네상스 미술의 극복한 그의 업적 은 그의 묘비명에서도 찬사 받았다. 그 곳에는 "자연이 그를 두려워했다."고 쓰여 있다. 르네상스의 3대 거장 가운데 가장 젊었으며 가장 까다롭지 않고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던 라파엘로는 교황 율리우스의 요청대로 로마로 오기 전 다빈치의 많은 작품들을 보았으며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또 다른 그의 스승인 페루지노로 부터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공간의 깊이를 표현한 정돈되고 우아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레오나르도의 서정성과 미켈란젤로의 극적이며 회화적인 풍요한 화풍을 결합한 견고한 미술을 창조했다. 그는 동시대의 두 대가와는 다른 면을 보여주는 데 그것은 그가 그린 인물들의 순수함과 이상성에 있다 할 수 있다. 당시 자연의 충실한 재현을 중요시하지 않았던 대로 그도 역시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고대 고전시대의 이상美를 구현하려고 했다. 그가 성공한 것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잃기 쉬운 생명감과 성실성을 확보하므로 자신의 그림을 이상화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짧은 생을 살다 간 그는 벽화를 그린 벽화가이자 또 초상화가이기도 했다. 라파엘로의 예술은 명석과 조화, 정밀과 전아 라는 고전양식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동시에, 감성이 풍부한 자연주의와 이지적 추상화, 섬세 우아한 요소를 융합한 회화예술의 완전함의 전형이라고까지 보여진다. 그의 작품은 각 국의 왕후귀족이나 수집가들의 손에 의해 서유럽에 퍼져 마니에리즘에서 바로크, 신고전주의까지의 근세 서구 회화에서 권위 있는 미적 규범 및 관학적 학풍의 원천으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계속 미치고 있다.


참고문헌
*두산 세계대백과사전
*르네상스의 미술-로자 마리아 레츠-예경 산업사-1991
*http://www.zesus.com/raffaello.htm
*http://www.youth.co.kr/rs/rs03000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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