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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의 역사와 환경
(1) 퀘벡의 성립과 발전
퀘벡 땅에서의 최초 인간의 발자취는 약 1만 2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 유럽사람들이 퀘벡땅을 최초로 찾았던 시기는 9~10세기경으로, 그 당시는 정착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15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퀘벡 이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유럽인들이 이 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퀘벡에는 상당수의 원주민 부족 체제사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주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퀘벡의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퀘벡과 몬트리올의 형성
쟈끄 까르티에(Jacques Cartier)가 프랑스 왕의 명령으로 동양으로 가는 길을 찾아 대서양을 20일만에 건너 우연히 퀘벡의 첫 관문인 가스페(Gaspe)지방에 도착한 해가 1534년이었다. 하지만 퀘벡에 첫 발을 디디고 영토를 점령했던 쟈끄 까르티에는 이 곳에 정착하지는 않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이후 오늘날의 퀘벡시를 자리잡게 한 인물은 1608년의 사무엘 드 샹플렝(Samuel de Champlain)이었다. 원래 퀘벡이라는 말은 인디안 원주민어로 '강물이 좁아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프랑스로 불리던 퀘벡은 1603에서 1627년까지 단순한 모피 거래소에 불과했다. 그러나 혹독한 추위로 인해 1609년에는 겨울이 지난 후 프랑스인 생존자가 16명에 이르기까지 되었다.
1634년 트르와-리비에르(Trois-Rivieres)가 개척되면서 1642년에는 드디어 몬트리올까지 정착촌이 형성되었다.
식민지 쟁탈전과 캐나다의 상하분할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의 개척자들은 아카디(Acadie)지방과 생로랑 강가를 따라 정착을 했었다. 삼림지역을 개척하며 여기저기 무역로를 열어 놓은 이들은 멀리 남쪽으로는 현재 미국의 루이지아나까지 그리고 캐나다 서부 지역까지 진출했었다. 한편 이 시기 영국 식민지는 대서양 연안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이같이 팽창하던 프랑스와 영국간의 식민지 경쟁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1754년부터 1760년까지). 프랑스가 식민지 전쟁에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던 데 반해, 식민지 쟁탈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던 영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 승리의 주역으로 나선 울프(Wolfe)는 아브라함 평원의 전투에서 몽깡(Montcalm)이 이끄는 프랑스 군에 승리, 1759년 퀘벡시를 점령하였다.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개척하며 일구워 왔던 몬트리올도 1760년부터 영국군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1763년, 프랑스는 파리협정에 의해 누벨-프랑스를 영국에 넘겨주게 된다. 이리하여 퀘벡은 영국의 한 주가 되고 퀘벡에 사는 프랑스인들에 대한 동화정책이 시작되었다. 1965년 당시 캐나다의 인구 69,810명 대부분이 프랑스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권력층은 모두 영국계여서 불어를 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날로 높아졌다. 예를 들어 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신교도여야 했는데, 불어권은 모두 가톨릭 신자여서 불어를 할 수 있는 판사가 한 명도 없었다. 따라서 영어로 진행된 모든 재판에서 불어를 사용하는 프랑스계는 부당한 처우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773년 12월, 미국에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이 터지자, 긴장한 영국은 문제가 캐나다까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1774년부터 회유책을 쓰기 시작했다.
1791년 영국이 새로 제정한 헌법은 프랑스계의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즉, 식민지에 의회를 만들고 영어권으로 이뤄진 상부 캐나다(지금의 온타리오)-대부분이 미국의 독립 당시에 캐나다로 도망 온 보수 왕당파-와 불어권인 하부 캐나다(지금의 퀘벡) 두 부분으로 구분되었다.
연방법의 제정과 퀘벡의 독자적 의회구성
새로운 정치제도가 마련됨에 따라, 일부 정치 지도층은 불어권 캐나다의 권리와 세력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며, 독립을 요구했지만 영국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퀘벡 주민의 불만은 나날이 커져갔고 저항군이 결성되어 영국군과 여러 차례 충돌하게 된다. 독립운동의 진압에 나선 영국군은 1838년 마을을 불태우고 부녀자와 아이들을 집 밖으로 쫒는 등 탄압을 시작하여 수천명을 체포하고, 108명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이 중 60여명은 국외로 추방되었고 12명은 몬트리올에서 처형되었다.
영국은 퀘벡의 반발을 억압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1840년 통합법을 제정하여 두 부분의 캐나다를 하나로 통합시키고 영어를 유일한 공식 언어로 채택하였다. 이는 불어권 캐나다인들을 북미 지역에서 소멸되도록 한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1867년 7월 1일 영국 북미법에 따른 캐나다 연방법이 그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퀘벡, 온타리오, 뉴-브런스윅, 그리고 노바스코시아가 참가하였다. 연방법에 따라 퀘벡은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하고, 연방의 간섭을 받지 않고도 교육 및 민권 등의 분야에서 자치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퀘벡만의 특유한 문화를 연방으로부터 보호하고 이를 위해 불어를 영어보다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졌다.
퀘벡의 조용한 혁명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퀘벡은 보다 도시화되고 이민자들의 진입이 대거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9년 모리스 뒤플레시(Maurice Duplessis)와 가톨릭 사제들의 거의 독재에 가깝던 정권이 종결되면서 퀘벡은 정치, 문화, 경제 등 사회 전역에 걸쳐 급속한 현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변혁의 시기는 퀘벡 역사가들로부터 <조용한 혁명> 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만인의 평등을 보장하는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종교, 교육과 사회복지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새로운 분야의 산업이 탄생하고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도 대폭 증가한다.
그리고 1974년 불어가 퀘벡의 공식 언어로 선포되었고, <조용한 혁명>으로 승리한 르네 레벡(Rene Levesque)이 이끄는 퀘벡당은 1977년 프랑스 언어법을 선포하였다.
이로써 퀘벡이 불어권 지역으로서 특유의 문화와 정서를 유지해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퀘벡 독립의 좌절, 다문화 존중하는 퀘벡으로
독자적인 문화의 유지와 경제적 자립에 대한 자신감으로 1980년 퀘벡은 캐나다로부터 독립할 계획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찬성 49.4%, 반대 50.6%라는 근소한 차이로 독립은 좌절되었다. 독립을 위한 시도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1995년 쟈끄 빠리조(Jacques Parizeau)가 이끄는 퀘벡당은 캐나다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2차 퀘벡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또 다시 과반수를 얻지 못해 독립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독립을 위한 퀘벡당의 이같은 노력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시엥 부샤르(Lucien Bouchard)를 앞세운 퀘벡당은 1998년 선거에서 승리, 집권당이 되었다.
퀘벡은 캐나다 연방 내에서 퀘벡의 지위를 재 정립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북미에서 유일한 불어권 사회를 지키려는 노력과 함께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한 다민족의 특성을 존중하고 세계를 향해서도 적극적인 문을 열고 있다.
2003년 선거에서는 쟝 샤레(Jean Charest)가 이끄는 자유당이 퀘벡당을 누르고 승리하면서 퀘벡 독립문제는 한동안 잠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방주의를 지향하는 자유당의 노력이 독립을 지향해온 퀘벡의 전통을 어떻게 혼합, 혹은 극복해 나갈 지가 차후 5년간의 과제 중 하나라고 하겠다.
(2) 퀘벡의 인구와 영토
광할한 땅과 자원
퀘벡의 영토는 1,667,926km2이다. 이 면적은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독일을 모두 합한 면적과 맞먹는다. 지정학적으로 퀘벡은 남쪽으로는 미국이, 동쪽으로는 뉴-브런스윅, 뉴펀들랜드 & 라브라도르주, 그리고 대서양을, 서쪽으로는 온타리오주와 접해 있다.
수 많은 도시 지역 외에도 퀘벡에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광활한 삼림, 해양지대, 광산지대, 산업지대 등과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북극지방이 있다.
이처럼 풍성한 자원 외에도 퀘벡이 세계 자연의 보고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 중의 하나인 생로랑 강 줄기를 따라 자리잡은 수많은 호수와 강들때문에 전세계 담수 자원의 16%를 퀘벡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퀘벡의 인구와 언어
퀘벡주의 인구는 2002년 현재 약 745만명으로 온타리오주에 이어 캐나다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이다.
1960년대에 트뤼도 수상은 영어와 불어를 캐나다의 공식언어로 삼고 퀘백주에서 프랑스 언어와 문화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쳐 지금의 2개의 공식 언어를 가진 캐나다가 생겨났다.
이러한 전통으로 캐나다 10개 주 중 최대의 면적을 갖고 있는 퀘벡주는 프랑스에 이은 세계 제2의 불어권 지역이 되었다. 퀘벡의 가장 큰 도시인 몬트리올부터 세인로렌스강의 옛도시 가스펠 마을 등 퀘벡주 어디에서나 프랑스의 전통과 문화를 느낄 수 있다.
퀘벡주 인구중 약 83%는 불어권이며, 8%는 영어권, 그리고 또 다른 8%는 이민자들로 구성된 기타 언어권(이태리, 그리스, 포르투갈, 베트남, 아이티 등) 출신이다. 나머지 1%는 퀘벡주의 원주민이었던 아메리카 인디언이 퀘벡인구의 0.9%, 에스키모족이 0.1%를 차지하고 있다.
퀘벡문화의 특성
자끄 까르티에가 북미대륙에 발을 디딘지 450여년이 더 지난 지금도 퀘벡에는 여전히 프랑스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고, 그리고 주민들은 역사적 문화유적의 보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 역사성과 전통성
풍성한 역사적 유적지들
역사적 흔적은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퀘벡주 어디를 가나 식민지 초기 개척자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육지나 강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오래된 주거지와, 다리, 물레방앗간, 등대, 교회 등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역사적 유적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퀘벡 사람들에게 특히 의미가 있는 유적지를 손꼽아보면, 뉴벨프랑스의 산실인 Place Royale과 퀘벡시에 있는 요새를 들 수 있다. 몬트리올 주변의 유적지로는, Terrebonne에는 19세기 산업발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l’ le des Moulins, 식민지전쟁의 산 증인인 Richelieux의 샹블리 에레녹스 요새, 유럽인들의 캐나다 이민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Montmagny 근처의 la Grosse- le등을 들 수 있다.
전통성 내세운 독자적인 음식문화
몬트리올이 내세우는 음식중의 하나가 바로 훈제육류와 말린 생선(연어, 청어, 송어등)으로 만든 “boucaneries”이다. 또한 Saint-Jean 호수가 주변의 특별 요리로 유명한 tourti re도 퀘벡이 자랑하는 요리인데, 이것은 돼지고기, 감자, 양파, 페르씰, 셀러리, 마늘 그리고 밀가루로 만든 빠뜨 등의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외에도 완두콩 수프, 빠떼 쉬노아(고기와 빠떼로 만들어 옛날 중국 철도노동자들이 즐겨 먹었다고 함), 푸틴(감자튀김위에 소스와 치즈를 얹은 것), 로티(잘라 구운빵에 버터를 발라 구운 것) 등도 퀘벡의 전통 음식으로 꼽히고 있다.
후식류로는 블루엣 파이, 피칸파이 그리고 설탕파이가 유명하다.
(2) 창의성과 생동력
유럽과 북미의 예술을 동시에 포용하고 있는 퀘벡은 문화예술적으로 창의성과 생동력이 넘치는 곳이다. 이러한 특성은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무용, 미술 그리고 수공예에서도 잘 나타난다.
퀘벡주의 수도 퀘벡시에는 많은 박물관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문명박물관(le Mus e de la Civilisation), 퀘벡박물관(le Mus e du Qu bec)은 17세기 퀘벡의 미술품부터 오늘날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몬트리올에서는 몬트리올현대미술관(le Mus e d‘art comtemporain)이 퀘벡 및 해외의 현대미술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le Mus e des beaux-arts는 대규모 국제미술전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외에도 캐나다건축센터, 고고학박물관이 있고, Hull에는 캐나다문명사박물관도 있다.
해마다 수준 높은 문화행사가 퀘벡 여기저기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참여열기도 뜨겁다. 무대예술의 경우 미주연극페스티벌(Le Festival de th tre des Am riques), 국제뉴댄스페스티벌(Le Festival international de nouvelle danse), 퀘벡여름축제(le Festival d‘ t de Qu bec) 등이 있으며, 음악분야의 경우, 프랑스문화권음악축제(les Francofolies), 라노디에르페스티벌(le Festival de Lanaudi re), 오르포르페스티벌(le Festival d’Orford), 도멘포르제페스티벌(le Festival du domaine Forget), 그리고 몬트리올재즈페스티벌(le Festival de jazz de Montr al) 등이 유명하다. 이 외에도 배쌩폴영페인팅심포지움, 드러먼빌세계민속축제, 몬트리올영화제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퀘벡의 행사이다.
몬트리올의 특징과 의료서비스
(1) 삶의 질 높은 국제도시
새로움과 전통이 복합된 국제도시
'북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몬트리올은 약 3백 50만 시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캐나다 제2의 도시로 캐나다 최초로 1976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이다. 1642년 메조뇌브가 프랑스의 식민지로서 세인트로랜스 강가에 건설한 빌마리가 몬트리올 역사의 시작이다. 1701년 평화 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원주민들과 프랑스 이주민 사이의 분쟁이 일어났으나 조약체결 후 모피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눈부신 경제 번영의 중심지가 되었다. 초 현대적 빌딩들이 운집한 신시가지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 몬트리올이 공존하는 몬트리올은 퀘벡주를 대표하는 곳이다. 불어권 시민들이 대다수이지만 영어권과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는 30여개 국의 이민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새로운 것과 전통이 서린 오래된 유적, 그리고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문화가 융화된 독특한 복합문화 사회는 몬트리올 최대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1867년 캐나다 연방이 성립된 후 몬트리올은 경제적 요충지로 떠올랐으며, 퀘벡을 대표하는 대도시 답게 매년 대규모 이벤트과 국제적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2002년 몬트리올은 건설 "360"주년을 맞았다.
국제적 공인받은 높은 삶의 질
1997년에 이어 1998년에도 캐나다는 유엔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에 의해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국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몬트리올 광역시는 Corporate Resources Group of Geneva사가 세계 대도시 지역을 대상으로 정치, 사회, 경제, 보안, 보건, 교육, 그리고 주택분야 등의 42개 기준을 가지고 삶의 질을 조사한 결과 살기 좋은 도시 상위권에 들었다.
몬트리올은 또한 국제적인 미감을 가진 도시로도 유명한데, 미국 잡지 Food & Wine이 세계적인 미각도시 중의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활동적인 시내와 상쾌한 주거지역이 잘 어우러진 몬트리올에는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하고 활발한 문화 생활을 향유할 여건을 갖추고 있다.
생동력과 창의성 넘치는 문화도시
Cirque du Soleil라는 서커스단이 보여주는 놀라운 성장은 몬트리올이 얼마나 창의성이 있는 도시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1984년에 설립된 이 서커스 전문 회사는 새로운 쇼 개념을 도입해 서커스 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Cirque du Soleil는 미국 4개 상설 극장에서 일년 내내 공연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다른 3개 팀이 4대륙을 순회하며, 명실공히 다국적인 서커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예는 세계 최초이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되는 문화 행사는 참으로 다양하다. 고전 발레를 보여주는 Les Grands Ballets Canadiens, 현대 무용의 진수를 보여주는 LaLaLa Human Steps,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중의 하나인 Montreal Symphony Orchestra 등은 몬트리올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문화단체들이다.
이외에도 Cinar Films, Coscient Group 등은 TV 시리즈와 영화 등을 제작해서 130여개가 넘는 국가에 수출해 35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는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이 기업들이 창출해 내는 가치는 1억 달러도 넘는다. 또한 퀘벡 출신의 세계적 가수로 유명한 셀린 디옹의 앨범은 전세계 40개 국가에서 판매되어 몬트리올 음악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 불러 모으는 국제적 행사들
몬트리올의 모든 행사는 시민들의 열렬한 참여속에 진행된다. 몬트리올 국제 재스 페스티벌, 코미디 페스티벌 (Just for Laughs Festival), 그리고 몬트리올 영화제는 특히 인기가 높다.
이외에도 Formula 1 Air Canada Grand Prix 자동차 경주, 국제 벤슨 앤 헤지 불꽃놀이 대회(International Benson & Hedges Fireworks Competition), 뒤모리에 테니스 대회등 다른 여러 행사도 열려 매년 수 많은 관광객들이 몬트리올을 찾는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를 보기 위해 매년 3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몬트리올을 찾고 있다.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행사들이 매년 성황리에 개최되어 전세계인들이 설레임으로 몬트리올을 방문하게 되는 것은 몬트리올이 얼마나 살아있는 도시인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2) 안전한 환경과 저렴한 생활비용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 환경
몬트리올은 안전해서 일반 시민들이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저녁을 먹고 음악을 즐기기 위해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북미의 몇 개 안되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범죄율이 극도로 낮은데다가, 이 비율은 1990년 이래로 계속 줄고 있다.
몬트리올 시내는 사무용 빌딩들, 백화점, 소형상가들, 대학들, 종합병원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이 시내 가까운 곳에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주택가가 자리잡고 있다. 사실 다른 북미 대도시들과는 달리, 몬트리올 시내에는 시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많은 주거공간이 있다.
몬트리올에서는 출근 시간 30분 거리안에 조용한 주택가의 단독 주택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 지하철, 교외선 기차, 그리고 버스가 시내 모든 지역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매우 편안하게 대로, 공공장소, 그리고 지하도시로 갈 수 있다.
30km에 이르는 몬트리올 지하통로 도시는 각종 쇼핑센터가 가득 차 있는데, 이 지하도시는 지하철 뿐만 아니라 60개의 빌딩과도 연결되어 있어, 도시 밑의 또 다른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몬트리올 지하도시는 이런 유형의 보행자 위주 쇼핑센터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곳이다. 매일 50만 명이 이 지하도시를 이용한다.
다양한 주거지와 인접한 휴양시설들
21세기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몬트리올 지역은 세계의 대도시 중에서 주거비가 드물게 낮은 곳 중의 하나라고 한다. 몬트리올의 주택가격은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아주 싼데, 보통 몬트리올 수준의 집을 다른 북미 도시에서 구입하려면 최소한 두 배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몬트리올의 주거 환경은 참으로 다양하다. 북미 도시들 중 가장 역동적인 다운타운 뿐 아니라 쌩로랑 강 남쪽 해안을 따라서도 매력적인 작은 마을들이 발달해 있다. 그리고 라발이나 다른 교외 지역에서도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집이 건축되어져 있다. 이들 지역의 평균 주택면적은 450평방 미터인데, 이 교외 지역들은 몬트리올 시내에서 2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몬트리올 광역시 주변에는 굉장히 많은 휴양 레저 공간들이 있다. 몬트리올에서 1시간이 채 안되는 지점에 30여 개가 넘는 스키장이 자리잡고 있고, 50여 개가 넘는 해양 레저시설이 있다. 주거지와 휴양공간이 일일생활권으로 연계된 이같은 환경은 세계 대도시 중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낮은 생활비
Corporate Resources Group이 실시한 연구 조사 결과, 몬트리올은 조사 대상 17개 도시중 생활비가 가장 싼 도시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는 150개가 넘는 생필품 및 서비스 가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주택관련 비용과 교육비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의 식 주와 보건 및 교육 분야에 있어서 몬트리올의 물가는 세계 그 어느 도시 보다 싸다. 그러나 가격에 비해 상품의 질은 아주 높아서 몬트리올에 왔다가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드물다고 할 정도다.
한국에서 생활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교육비이다. 몬트리올의 공립교육은 그 수준이 높으면서도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어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양질의 공립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이전 과정까지 불어와 영어로 진행된다. 대학교육의 수준은 몬트리올에 위치한 매길대와 몬트리올대의 경우, 미국 아이비 리그 수준과 같은데, 등록금은 북미에서 가장 싼 편에 속한다.
(3) 몬트리올의 의료 서비스
퀘벡의 의료제도
퀘벡주의 의료는 6백여 개의 정부와 개인 의료시설, 수 백여 개의 클리닉, 약 2천 여 곳의 지역기관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퀘백주 예산의 3분의 1이 의료와 복지후생에 쓰이고 있다. 몬트리올에서도 정부에서 각 지역별로 운영하고 있는 CLSC를 비롯, 개인클리닉들과 최근 초대형병원을 건설하고 있는 매길대학 건강센터(McGill University Health Centre: MUHC), 몬트리올대학병원, 유태인병원, 아동병원 등이 있다.
캐나다는 가정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 클리닉을 찾기 전에 가정의와 상담하여 소견서를 가지고 전문 클리닉이나 2차 진료기관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해당 지역의 CLSC 창구에 가면 지역내에 위치한 의료기관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다.
가벼운 감기약, 두통약 정도는 의사의 처방없이도 약을 살 수 있으나, 항생제 계통은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구입할 수 없다. 회사에서나 개별적으로 의약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에는 약값은 개인이 지불해야 하며 비싼 편이다. 단 학생, 노약자 등을 위한 약값 보조 프로그램이 있다.
퀘벡의 의료보험제도가 커버하는 부분은 방문상담, 심리치료, 진단과 치료, 수술, X선 촬영, 마취 등과 병원 센터 내에서 수행되는 특별 검사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보건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심리분석 서비스, 침술, 미용을 위한 수술, 개별의료클리닉에서의 검사, 정맥주사, 안경과 콘텍트 렌즈, 운전면허증, 고용, 교육기관 등에 제출하기 위한 필요에서 하는 경우 등에는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다.
치과의 경우 원칙적으로 보험 적용이 되지 않지만 10세 이하 아동, 최소 12개월 이상 최저생계비 보조를 받는 사람과 그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보험이 적용된다. 그리고 의료보험 가입자가 긴급사고를 당했거나 구강수술을 했을 경우에는 보험 적용이 이루어진다.
몬트리올 어린이 병원(Montreal Children’s Hospital)
0-18세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몬트리올 어린이 병원(이하 MCH)은 1904년 몬트리올 최초의 클리닉으로 시작하여 1956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고, 1997년부터는 매길대학 건강센터의 소아과병원으로 운영되는 2차 진료기관이다. 특수한 서비스나 복합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아동들이 개인병원이나 CLSC로부터 의뢰된 경우에 진료를 받을 수 있으나, 일반병원이 문을 닫은 저녁시간이나 주말의 경우 응급진료가 가능하다.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사전약속이 필요하고 이때 1차 진료기관의 의사소견서와 예방접종기록, 메디케어카드 등이 필요하다. 응급의 경우는 24시간 예약없이 진료가 가능하지만 4단계로 구분되어 진단, 가장 응급한 환자부터 순서에 관계없이 처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서비스는 무료로 이루어지지만 메디케어가 없는 환자의 경우 일정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또한 이민자로서 만약 아동이 캐나다에 머문지 12개월 미만으로 특수 진료를 받아야 할 경우에는 다문화 진료실(Multicultural Clinic)로 문의하면 된다.
영어나 불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면담약속을 정할 때 미리 통역자를 요구하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한국어 서비스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는 주중에만 가능하며, 예약서비스 담당자에게 미리 요청하여야만 한다.
담당의나 간호사를 통해서 혹은 보호자 스스로 사회사업 파트에 서비스를 요청하면, 경제적 지원, 병원이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지역사회자원활용, 상담, 권리옹호, 그리고 퇴원 후 아동보호 등에 대한 지원제공이 가능하다. 특히 병원이용에 대한 불만사항이나 전문가의 견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옴브즈맨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또한 장기입원의 경우 아동생활전문가를 통해 병원내에서의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놀이방 이용 뿐 아니라 각종 집단프로그램), 아동이 학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초등과정과 중등과정 교육서비스가 지원된다.
홈페이지는 www.thechildren.com이며 대표전화 934-4400, 지하철 Atwater역의 2300 Tupper에 위치해 있다.
지역 의료 복지기관 CLSC
CLSC(Centre Local de Services Communautaires)는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임상심리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통해 의료 및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지역사회복지기관이다. 가족/아동(12세이하), 청소년, 성인 영역으로 구분되어 서비스가 제공된다. 임산부 지원과 출산 후 산모지원, 각종 예방접종 및 혈액검사, 치료 서비스(의사진료, 간호사 진료), 가족문제 상담, 사회심리 상담서비스, 지역사회자원안내(병원, 데이케어, 법률 등 각종 사회서비스기관) 등이 실시된다. 이 외에도 노인들을 위한 방문간호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역사회주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제공되는 프로그램과 서비스의 내용에는 기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이용시간은 주중에는 8a.m-8p.m, 주말에는 8a.m-4a.m까지다. 그러나 의료와 각종 검사 서비스는 주중에만 제공되며, 보통 예약을 하지 않아도 진료가 가능하지만 특정한 시간대를 원할 경우 미리 약속을 잡는 것이 좋다. 지역별 대표 연락처와 주소는 다음과 같다(tel: 514-842-5141, 873-2111 www.santemontreal.qc.ca).
<표 1-10> 몬트리올 지역 CLSC의 위치와 연락처 
유용한 웹사이트 및 연락처, 생활정보
종교단체(무순)
식품점(무순)

주요 교민단체(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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